/7
✒ 짭짤한시인 문학방 ✒
[수필] 수선비가 옷값보다 비쌀 때
1/4
수선비가 옷값보다 비쌀 때
때로는 옷을 수선하는 비용이 그 옷을 처음 샀던 가격보다 더 많이 들기도 한다.
처음에는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다. 20달러 주고 산 옷을 수선하는 데 왜 30달러를 써야 할까?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질문을 잘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진짜 질문은 “이 옷을 얼마에 샀는가?”가 아니다.
“이 옷이 무엇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가?”이다.
아무리 비싼 명품 옷이라도 너무 헐렁하거나, 너무 꽉 끼거나, 너무 길거나, 단순히 자신의 몸에 제대로 맞지 않는다면 그 이름과 가격이 지닌 가치를 충분히 발휘할 수 없다.
반대로 Goodwill 같은 헌옷 매장에서 20달러에 산 재킷이나 바지도 숙련된 수선을 거쳐 자신의 몸에 아름답게 맞게 되면 가장 즐겨 입는 옷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가끔 옷수선을 일종의 ‘거듭남’이라고 생각한다.
기독교에는 ‘거듭남’이라는 개념이 있고, 불교에는 ‘각성’이나 ‘깨달음’과 같은 개념이 있다. 물론 옷을 수선하는 일이 그렇게 심오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하나의 비유로 생각한다면 서로 닮은 점이 있다.
이전에는 나에게 맞지 않아 제 역할을 하지 못했던 것이 변화하여 새로운 생명을 얻는 것이다.
따라서 수선의 가치는 언제나 그 옷의 원래 가격과 비교해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수선사는 가격표를 수선하는 사람이 아니다.
옷을 수선하는 사람이다.
바지를 20달러에 샀든 2,000달러에 샀든, 바지 밑단을 줄이고, 통을 좁히고, 허리를 조절하고, 옷의 일부를 다시 만드는 일에는 똑같이 시간과 기술, 판단력과 경험이 필요하다.
옷수선은 여러 해에 걸쳐 배워야 하는 기술이다. 나 역시 이 일을 약 20년 동안 해왔지만 여전히 배우고 있는 것들이 있다. 어머니와 나는 오랫동안 서로 다른 종류의 수선 작업을 나누어 맡아왔는데, 그러한 경험을 통해 겉보기에는 단순해 보이는 이 기술이 실제로는 얼마나 깊은 것인지 알게 되었다.
옷이라는 것 자체를 한번 생각해 보자.
인류의 역사에서 옷만큼 인간의 몸과 끊임없이, 그리고 밀접하게 함께해 온 물건이 또 무엇이 있을까?
음식은 먹으면 사라진다. 집에서 살지만 우리는 매일 집을 떠난다.
그러나 옷은 우리와 함께 간다.
옷은 우리의 몸에 닿고, 우리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우리의 개성을 드러낸다. 때로는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에도 영향을 미친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나뭇잎과 가죽옷에서부터 오늘날 우리가 입는 무수히 다양한 옷에 이르기까지, 의복은 인류 문명과 함께 발전해 왔다. 그리고 똑같은 사람의 몸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 옷을 각각의 사람에게 맞추어야 할 필요성은 언제나 존재해 왔다.
그것이 바로 옷수선의 목적이다.
어쩌면 인공지능 시대에도 옷수선은 완전히 대체하기 어려운 인간의 기술로 남을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몸이 다르고, 옷마다 만들어진 방식이 다르며, 손님마다 원하는 것도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언젠가 AI와 로봇이 이 일마저 인간의 손보다 더 잘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어쩌면 인류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평생 노동하는 데 쓰던 시간을 줄이고, 인간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경험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하는 삶 말이다.
하지만 그날이 오기 전까지 손님들이 한 가지는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수선의 가치는 그 옷을 얼마에 샀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20달러짜리 옷이라도 몸에 맞지 않으면 여전히 몸에 맞지 않는 옷일 뿐이다.
그러나 숙련된 사람의 손을 거쳐 자신의 몸에 꼭 맞게 변화한 그 20달러짜리 옷은 계속해서 손이 가는 소중한 옷이 될 수 있다.
옷수선은 단순히 옷을 고치는 일이 아니다.
옷에게 또 한 번의 기회를 주는 일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이 바로 옷의 거듭남이다.
때로 수선비가 옷값보다 비싼 이유는 우리가 돈을 지불하는 대상이 그 옷의 과거 가치가 아니라, 새롭게 만들어질 가치이기 때문이다.
2026년 8월 8일
1/4
짭짤한시인 문학방
미주 전지역 구인정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