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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예/영성 -


[문학] 아내와 나 사이 - 추천 글

   

♧♧
  아내와  나  사이 
         詩 人 / 李 生 珍
               (1929~  )  
 
     아내는 76이고
     나는 80입니다.
     지금은
     아침저녁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지만
     속으로
     다투기도
     많이 다툰
     사이입니다. 
 
     요즘은 망각을
     경쟁하듯
     합니다. 
 
     나는 창문을
     열러 갔다가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고 
 
     아내는
     냉장고 문을
     열고서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누구 기억이
     일찍 들어오나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은 서서히
     우리 둘을
     떠나고
     마지막에는
     내가 그의
     남편인 줄
     모르고
     그가
     내 아내인 줄
     모르는 날도
     올 것입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가
     서로 알아가며
     살다가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 
 
     그것을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인생?
     철학?
     종교? 
 
     우린 너무
     먼 데서
     살았습니다. 

* 지난 2019년 봄, 평사리 최참판 댁 행랑채 마당에서 박경리 문학관 주최로 ‘제1회 섬진강에 벚꽃 피면 전국시낭송대회’가 열렸습니다.

60여 명이 참가한 이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던 낭송 시가 바로 이생진 시인의 이 작품입니다.

7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남성 낭송가의 떨리고 갈라지는 목소리에 실려 낭송된 이 시는 청중들로 하여금 눈시울을 젖게 하였습니다.

좋은 낭송은 시 속의 ‘나’와, 낭송하는 ‘나’와, 그것을 듣고 있는 ‘나’를 온전한 하나로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내 몸의 주인인 기억이 하나둘 나를 빠져나가서 마침내 내가 누군지도 모르게 되는 나이...

나는 창문을 열려고 갔다가 그새 거기 간 목적을 잊어버리고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고,

아내는 무엇을 꺼내려고 냉장고에 갔다가 냉장고 문을 열어놓은 채 그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앞이 막막하고, 울컥하지 않습니까?

시인은 차분하게 이 참담한 상황을 정리합니다.

우리의 삶이란?
“서로 모르는 사이가 / 서로 알아가며 살다가 /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일 뿐이라고...

그리고 자책하는 목소리에 담아 우리를 나무라지요.

거창하게 인생이니, 철학이니, 종교니 하며 마치 삶의 본질이 거기에 있기나 한 것처럼 핏대를 올리는 당신들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하고...

진리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우린 너무 먼 데서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아내와 나 사이’의 거리는 우리의 어리석음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바로미터인 셈이지요.


출처: 내쉬빌 한인 커뮤니티 톡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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